태국의 가톨릭

불교의 나라 태국에서 가톨릭교회는 2개의 대교구(ARCHDIOCESES), 10개의 교구(DIOCESES), 436개의 본당(PARISHES) 및 662명의 사제로 구성되어 있다. 신자수로는 29만 명으로 전체 인구에서 약 0.46%를 차지하고 있다.(WIKIPEDIA, 2008)

사제로서 태국에 천주교 복음을 최초로 전하신 분은 1554년 포르투갈 군함을 타고 당시 시암 왕조의 수도 야유타야에 도착한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신부와 세바스티안(SEBASTIAN DE CANTU) 신부이다. 이후 많은 사제와 수도사들이 천주교 신앙의 불모지에서 현지인들과 태국을 기반으로 사업 등을 하는 중국계/포르투갈계 이민자 및 무역상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노력하였다. 시암 왕조 시절인 1662년 8월, 교황 알렉산더 7세는 시암 지역을 대교구로 지정하였고, 1673년 레이노(LANEAU) 신부가 시암의 초대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시암 왕인 프라 나라이(PHRA-NARAI)는 가톨릭 선교활동에 호감을 갖고, 교회, 선교사 숙소 및 신학원을 지을 수 있도록 토지를 제공하는 등 가톨릭 복음전파의 기반을 조성하는데 많은 지원을 하였다. 또한 시암 왕국 내에서 선교활동의 자유를 주었고, 가톨릭을 믿는 백성들에게 일요일에는 노동에서 면제시켜 주는 등 혜택을 베풀었다.

그러나 복음 전파의 길이 항상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과격한 무신론자 및 버마의 무자비한 침략세력에 의해 주교와 선교사들이 투옥되는 등 적지 않은 박해를 받아야 했다. 박해시절에는 신자 수가 1만2천명에서 1천명 수준으로 감소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종교적 박해에 굴하지 않고, 태국 천주교회의 복음전파 노력은 태국에 머무르지 않고, 주변국가에 영향을 미쳤고, 멀리 한반도에 복음을 전파하는 기지로도 활용되었다. 제1대 조선 대교구장(1981-1835)으로 임명된 브뤼기에르(BRUGUIERE) 소(蘇) 신부는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으로 시암 대교구의 부주교를 역임하였다. 소 주교는 조선에 입국하기 위해 애쓰다가 1835년 10월 국경지대인 만주에서 사망하게 된다(책 ‘이 빈들에 당신의 영광이’- 김대건 신부의 편지모임).

1834년 꾸베지(COURVEZY) 주교가 대교구장으로 임명되고, 박해의 고난이 약해짐에 따라 가톨릭 신자수가 6590명, 11명의 유럽계 신부, 7명의 현지 신부로 증가되었다. 태국의 몽쿠트(MONGKUT, 1862-1872)와 출라롱콘 (CHULALONGKORN, 1868-1910) 왕과 대교구장과의 호혜적인 관계유지로 인해 19세기 중엽 이후 상당기간 평화를 유지하고 교회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20세기 시작 무렵에는 신자 수는 2만3천명에 이르렀고, 55개의 교회와 성당이 운영되었다.

1975년에는 인도차이나에서의 피난민 긴급구호 활동 등을 위해 가톨릭 긴급피난 구호 사무소가 설치되었다. 1984년에는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처음으로 태국에 방문하였다. 1989년 10월 태국 순교자들(THE MARTYRS OF THAILAND)이 시복(諡福)되었다.

천주교 방콕한인성당 역사

1977년 한국에서 방콕으로 사업차 이주한 안홍찬(루카)씨에 따르면, 그 당시 방콕 루암루디에 위치한 성 리디머(HOLY REDEEMER)성당에서 매주 주일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한국인 가족들은 여섯 가족이었다고 한다. 주로 한국회사의 지, 상사원으로 파견나온 신자나 현지 교민들로 이루어진 이들 가족들은 3개월에 한번씩 성 리디머 성당의 갓 바오(GOD BAO) 신부를 초청하여, 시암스퀘어에 있는 중식집에서 저녁식사를 겸한 친교모임을 갖는 정도였다고 한다.

방콕은 항공기들의 허브 공항의 역할을 하다 보니 다른 목적지로 가다가 들리는 사제들이 종종 있어서 잠시지만 들리는 사제들의 도움을 심심치 않게 받게 되었다. 1979년 9월에는 대구 대교구의 박형진(아오스딩) 신부가 필리핀의 라디오 베리타스(RADIO VERITAS)를 방문하였다가, 귀국길에 방콕에 들려 대사관을 통해 안홍찬 씨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연락이 돼서 박형진 신부는 신자들의 모임을 시작하도록 이끌어 주었고, 초대 사목회장에 지백산(JAMES)씨가 선출되고, 총무에 안홍찬(루카)씨가 맡아 천주교 한인 공동체 사목협의회가 구성되어 봉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에 함세웅 신부 등을 비롯하여 몇몇 사제들이 잠시 들리면서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갔다. 그러다가 1982년에는 안동 교구에서 사목활동을 하던 백태원(PIERE) 프랑스 신부가 지나가는 길에 방콕에 들려서 한인교우들과 함께 파리 외방전교회 성당에서 미사와 고해성사를 집전해 주었고, 같은 해 10월에는 김수환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 김남수 주교 등 한국 교회의 고위 성직자들이 아시아 주교회의에 참석차 방콕에 들리게 되어 당시 주 태국 교황청 대사인 말티노 대주교와 함께 교황청 대사관에서 성대한 미사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 준비 중이었던 예비 신자들의 영세와 견진, 혼인성사 예식까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추기경께 부탁을 하여 사제의 파견은 어려우나 지나가실 기회에 꼭 들려서 방콕 교우들의 영성 지도를 해주실 것을 부탁함으로써 많은 신부들이 이곳 태국을 방문해 영성 생활에 도움을 주고 가셨다.

그러던 중 1983년에 메리놀 선교회 소속 반기엘모(부산 교구에서 10년, 인천 교구 주안 5동 성당에서 5년간 사목활동을 함) 신부가 방콕으로 발령을 받아 부임하게 되었다. 반기엘모 신부는 6개월간의 태국어 교육을 받고 농까이 지방에서 농사지으면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그때 반기엘모 신부에게 부탁을 해서 한 달에 한번 정기적으로 한국어 미사와 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미사 후에는 콕에서 800킬로 떨어진 농까이에서 13시간을 기차를 타고 오는 반기엘모 신부의 열성에 감동을 받아, 미사 후에는 교우들이 모두 참여 하여 코리아 하우스에서 점심을 함께 하는 등 교우들이 하나 되는 등의 은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음 해인 1984년에 반기엘모 신부가 메리놀회 방콕지회의 책임자로 부임하여 한인공동체는 한 달에 한 번 미사에 참여하다가, 이제는 매주 미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사용 중이던 세인트 도미닉 학교(SAINT DOMINIQUE SCHOOL) 내 성당이 협소할 정도로 신자 수도 증가하였다. 그래서 세인트 루이스 성당(지금의 SAINT LOUIS HOSPITAL 내의 작은 성당)으로 옮겨 활기찬 신앙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때 성모회, 성가대 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구 안토니오(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신부가 한국에서 8년간 수도회생활을 마치시고, 방콕에 오게 되어 천주교 한인 공동체는 한국말을 잘 하는 두 명의 사제들과 함께 더욱 활기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반기엘모 신부는 나중에 캄보디아로 발령을 받아 떠나셨으나, 구 안토니오 신부는 계속해서 천주교 방콕 한인 공동체를 지도 해주었다. 당시 구 안토니오 신부는 남사이 지역의 나환자촌, 에이즈(AIDS) 환자촌을 담당하고 있어서 신자들은 그곳에 가서 야외 미사도 하고, 봉사활동도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또한 반기엘모 신부와 구 안토니오 신부는 파타야에 있는 교우들을 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교우들을 위해 미사를 해주었고, 피정도 파타야 구속주회 피정의 집에서 하여 많은 파타야의 교우들이 참석할 수 있었다.
특별히 한인 공동체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주 태국 교황청 대사 말티노 대주교는 부임 기간 동안 여러 해에 걸쳐 성탄절 미사를 직접 집전해 주는 등 많은 교우들이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받고 시작된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만큼 방콕 천주교 한인공동체도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는다고 믿고 있었다.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여러 사제들이 함께하는 가운데 방콕 천주교 한인공동체는 안정되고 성장하게 되어 여러 믿음의 활동들도 하게 되었다. 해군 사관학교• 해양대학교 실습생들이 태국을 방문하였을 때 함께 미사도 하고, 파티도 하였으며, 불우이웃돕기, 주일학교 활성화, 장애자 방문, 고아원 방문, 형무소 방문 등 많은 활동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파티, 체육대회 등 많은 행사와 봉사활동이 이어졌다.
구 안토니오 신부가 캐나다로 유학을 떠나게 되어 다시 목자가 없는 공동체가 되는 줄 알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캄보디아에서 3년 베트남에서 3년간 사목 활동을 하던 반기엘모 신부를 다시 태국으로 보내 주시어 목자의 지도 아래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95년에는 펫부리 로드에 위치한 돈보스코 기술학교 안에 있는 성당으로 이전하여 한국어 미사를 반기엘모 신부가 집전하면서 천주교 한인 공동체는 이제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반기엘모 신부는 자신의 소임과 한인 공동체를 동시에 맡아 지도하기에는 너무 벅차게 되어 이제 한국 신부를 초청해도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 사제의 파견을 요청을 하였다.
이에 당시 주교회의 산하 이주사목위원장이던 군종 교구의 정명조 주교는 부산 교구에서 신부의 파견을 요청하였고 당시 부산 교구장이던 이갑수 주교는 1997년에 군종신부 소임을 마친 박만춘 신부를 천주교 한인 성당의 초대 주임 신부님으로 파견하여 한국인 신부에 의해 사목이 되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재 외국 한인성당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박만춘 신부는 방콕 초대 한인성당의 주임신부로서 본당의 기틀을 만들기 위해 재정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신자들과 동고동락을 하며 노력하던 중에 교통사고와 와병으로 애석하게 귀국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방콕 한인 성당은 또 다시 목자 없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잠시 공백이 있었으나 부산 교구장 이갑수 주교는 김현일 신부를 2000년 3월에 제2대 방콕 한인 성당 주임신부로 파견하였다. 김현일 신부는 약 5년간 방콕 한인 성당에서 사목활동을 하면서 성당의 기본 조직인 소공동체(구역)를 정리하고 많은 신자 재교육을 통해 그 동안 부족했던 신자들의 기본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힘쓰는 등의 사목활동을 통해 방콕 한인 성당의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재정적으로도 안정되어 후임 신부가 공동체의 보금자리라고 할 수 있는 교육관을 마련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부산 교구 제 3대 교구장인 정명조 주교는 2005년 1월, 5년간의 사목활동을 한 김현일 신부 후임에 김원석 신부를 방콕 한인 성당 제3대 주임신부로 파견한다. 김원석 신부는 부임하여 그 해 10월에 에까마이 쏘이 12에 교육관을 마련하고 11월 16일에 부산 교구장인 정명조 주교의 태국방문에 맞추어 교육관 축복식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방콕 천주교 한인 성당은 에까마이 교육관 중심의 신앙생활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2006년 3월에는 방콕 대교구로부터 교육관을 정식 경당으로 승인을 받게 되어 부활•성탄 등 모든 전례를 자체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경당으로써 교육관은 이제 성체(聖體)를 모시고 성체 조배 등의 신심행위와 매일미사에 참여함으로써 성체성사를 통해 신자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는 영성적인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방콕과 파타야 교우들만의 사목에서 태국전체를 사목하기 위하여 2006년 푸켓공소를 마련하여 교세확장을 꾀하였다. 2008년 10월 본당설립 10주년(사제파견 10주년)을 맞이 하여 김원석 신부 후임으로 이상일 신부를 파견 하여 제 4대 신부를 맞이한다.
이상일 신부는 부임 후 10주년 행사로 “화해와 쇄신 연수회”와 “ 방콕 1차 성령 세미나를” 성공적으로 치러 내고, 2009년 사목목표인 1인 1레지오 가입하기로 정하여 3개 프레시디움을 7개로 늘렸으며 꾸리아를 탄생 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10여 년간 교우들의 신앙생활을 제대로 지원 해 주지 못한 아쉬움에 사무실과 사무장을 고용하여 교우들의 신앙생활에 필요한 제반 서류 및 지원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였다. 어린이 미사를 신설하여 주일학교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2011년 에카마이 교육관을 마감하고 펫부리 교육관을 마련하여 부족한 교리실 및 회합실을 확보 하였다.

2012년 10월 제 5대신부로 부임한 신동원 다니엘 신부는 부임 후 그 다음 해인 2013년 3월 그동안 방콕신자들의 오랜 염원인 우리만의 성당을 람캄행에 위치한 살레시오 수녀원 안에 마련하였다. 교육관과 성당이 분리되어 겪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수녀원 부지에 교육관을 신축하여 2014년 8월 교육관을 봉헌함으로써 한인신자들이 완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고 그 토대 아래 자모회, 남성구역, 골프 동호회 청년회 성모회등 많은 제단체를 만들어 제단체 활동을 활성화 시켰다.

역대 사목회장

No재임기간이름 (세례명)비 고
11979 ~ 1985지백산 (제임스)
21986 ~ 1987안홍찬 (루카)
31988 ~ 1988이춘웅
41989 ~ 1994김용관 (바오로)
51995 ~ 1995김영준 (라파엘)
61996 ~ 1996정의도 (알베르또)
71997 ~ 1998김형곤 (요한)
81999 ~ 1999김용관 (바오로)
91999 ~ 2000조석순
102000 ~ 2001윤희선 (요셉)
112001 ~ 2203정호광 (바오로)
122003 ~ 2005함상욱 (야고보)
132006 ~ 2007김익로 (필레몬)
142008 ~ 2009함상욱 (야고보)
152010 ~ 2011이만재 (미카엘)
162012 ~ 2012정태국 (니콜라스)
172013 ~ 2014이병국 (요셉)
182015 ~ 2016정용익 (스테파노)